2020년 1월의 어느 날
한인 게스트하우스라 뭔가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이 안락한 방엔 침대가 서너 개 놓여 있다. 빨래는 무료로 여기서 일하는 스텝에게 맡기면 된다. 큰 짐은 캐리어에 넣어 게스트하우스에 맡겨 두고 오늘 난 마사이마라 게임 드라이브를 떠난다. 어저께 에티오피아에서 다나킬 투어를 하고 온지 하루만에 다시 투어를 한다. 시간과 돈이 없는 여행자는 하루라도 아껴서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한다.
어제 안 좋았던 몸은 괜찮아져서 투어를 떠날 준비는 다 되었다. 작은 배낭에 2박 3일 생활할 짐을 챙긴 뒤에 8시 30분에 날 데리러 온 기사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기사에게 투어비 260달러를 지불했다. 게임 드라이브는 케냐의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가 유명한데,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는 인간이 그어 놓은 경계(국경선)에 의해 나뉘는 같은 지역이었다. 세렝게티가 마사이마라보다 9배 넓다고 한다. 내가 세렝게티가 아니라 마사이마라를 선택한 건 가격이 가장 큰 이유였다. 거의 3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케냐에선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게임 드라이브 말고, 킬리만자로에서 트레킹도 하고, 잔지바르에서 휴양도 할 계획이라 탄자니아에서 세렝게티까지 가면 탄자니아에만 너무 오래 있고, 케냐에선 하루만 머물고 가야 하기 때문에 게임 드라이브는 탄자니아에서 하기로 한 거다.
케냐의 나이로비는 교통체증으로 유명한데, 내가 하필 출근 시간에 움직여서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었다. 기사가 여기 사람이라 차가 밀리지 않는 골목길같은 곳으로 요리조리 피해서 목적지로 가는 것 같았는데, 가는 동안 반대 차선은 꽉 막힌 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차들로 가득했다.
기사는 나를 한 주유소 앞에 내려 줬고, 거긴 낡고 오래된 작은 봉고가 있었다. 내가 마사이마라 게임 드라이브를 할 차량이었다. 주차장에는 크고 멋진 지프들도 주차되어있었는데 필히 그 지프들은 굉장히 비싼 투어비를 지불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차일 것이다. 주유소에는 작은 상점이 있었는데, 우리 나라의 편의점 같았다. 하지만 샐러드 바도 있는 현대식 가게였다. 아프리카에서 이런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난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갖고 온 모양이다.
우리 작은 봉고에는 7명의 투어 객이 꽉차게 탔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부부인 코넬리아와 번하드, 미국에서 온 키가 작은 젊은 백인 남성 테이, 미국에서 온 흑인 여성 니키,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여자 엘리사, 영국에서 온 젊은 여자 케이티. 부부 빼고 나머지는 모두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으로 젊어 보였다. 결국 이 투어에선 나만 동양인이었고, 나만 영어에 서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난 대화에서 빠지게 되었다.
나이로비를 벗어나며 본 나이로비 외곽의 모습은 네팔 카트만두의 외곽 모습과 꼭 빼닮아 있었다. 중국이 한창 도로를 다시 놓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은 아프리카 전체를 집어 삼킬 듯했다. 어딜가나 중국이 도로와 철도를 놓고 있었고, 도시에선 중국 상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아프리카 공항엔 중국 음식점까지 있었으니까.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직접 확인한 나는 중국의 힘이 무섭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나이로비가 왜 이렇게 선선하고, 카트만두와 비슷한 느낌일까 했는데, 고도를 확인하고 알았다. 나이로비는 카트만두보다 고도가 높은 2000미터 대의 고산 도시였다. 난 아프리카는 고산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내가 여행한 에티오피아만 해도 고산 지대가 많았고, 여기 나이로비 뿐만 아니라 마사이마라도 1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였다. 그래서 날씨가 무덥지 않았나 보다.
나이로비를 벗어나자 카트만두를 벗어나는 것 처럼 고도가 낮아졌다. 우리는 산 중턱 전망대에 섰다. 가이드 펠릭스가 이 지역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나는 설명을 듣는 중 마는 둥 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지질학적으로 의미있는 지역이었다. 확트인 공간에서 아래를 보니 숲이 울창했는데 저 편으로 기찻길이 놓여지고 있었는데, 펠릭스에게 물어보니 그것도 중국이 놓는 기찻길이었다. 투어가 의례 그러하듯 여기도 많은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들이있어서 기념품을 구경하고 차에 올라 탔다.
차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데 문득 이 동네에 서서 시장도 구경하고 하룻밤 묵어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프리카의 치안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는 곳은 여행자들이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동양인 여자가 돌아다닌다면(그것도 혼자서) 너무 눈에 띌 게 뻔했다. 한 동네를 지나가는데 시장이 크게 열려서 정말 들어가 구경하고 싶었다. 투어할 때 들르는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 보다 로컬 시장을 구경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텐데 여행사 상품엔 그런 게 들어가 있지 않다.
환승 센터라고 불리는 곳은 식당도 있고, 숙소도 있는 곳인데 거기서 영국에서 온 케이티가 합류했다. 케이티는 돈 많은 여행자인지 우리와 코스가 많이 달랐는데, 우리와 함께 사파리 투어도 하지만 도중에 잠깐 빠져서 열기구도 탈 예정이었다. 그리고 난 2박 3일 투어지만 그녀는 무려 7박의 투어를 예약해서 마사이마라에서 다른 지역으로 계속 투어를 이어나갈 예정이었다. 우리 팀에 이탈리아 여행자도 5박 이상 투어를 예약했다고 한다.
한 동안 길을 달리다가 한 식당에 섰다. 여행자들만 이용하는 식당으로 식당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식당 건물 울타리 안은 바깥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공간같았다. 바깥에 큰 마을이 있었고, 장도 서는 것 같아서 둘러보고 싶었지만, 왠지 바깥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울타리 안에만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화장실로 갔는데, 화장실 앞에서 손에 물비누를 짜주고, 티슈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걸 해주고 팁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실 물비누를 짜서 손에 뭍히고, 티슈를 뽑아쓰는 일은 내가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이런 서비스는 정말 불편했다.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않아서 팁을 주지 않았다.
식당 안은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음식은 대체로 모두 깔끔하고 맛있었다. 뭐가 아프리카 음식이고 뭐가 서양음식인지 모를 음식들이었다. 음식은 투어비에 포함되어있지만 음료와 물은 개인이 지불하고 사 마셔야 하는데 500리터 물이 우리 나라 돈으로 천원이나 했다. 우리는 각자 케냐돈을 꺼내어 계산을 했는데 꺼낸 케냐 돈이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다른 돈이라 깜짝 놀랐다. 같은 케냐 돈 1000원이 세 가지 종류나 있었던 것. 누가 보면 위조지폐인 줄 알겠지만, 종업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을 가져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포장된 도로를 달렸다. 이 도로는 포장한지 며칠 안 되는 듯 새 것이었는데, 아직 중앙선도 색칠하지 않은 도로였다. 이 도로도 중국이 놓고 있는 듯 했다. 잘 포장된 도로는 마사이마라 공원 거의 입구까지 이어졌다. 입구 근처에서 비포장 도로를 한 동안 달렸는데, 아마 한 두달 뒤에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마사이마라 공원 입구까지 포장된 도로를 달릴 수 있을 듯 했다.
마사이마라 공원 입구에서는 입장료를 지불해야했는데, 입장료가 얼마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투어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입장료를 지불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이드 겸 기사를 하고 있는 펠릭스는 직원과 약간 실랑이를 하는 듯 보였다. 여기서 입장료를 지불하는 동안 우리 봉고 주변으로 화려하게 악세사리로 치장을 한 이 지역 여자들이 팔목엔 각종 장신구들을 걸고, 손엔 한 가득 기념품을 들고 봉고 차창을 두드리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그런데 이 호객 행위가 도를 지나쳤다. 사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해도 계속 창문을 두드렸다. 간절한 눈빛으로 물건을 사달라고 애걸하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창문을 두드리다가 포기하고 가면, 다른 사람이 또 와서 창문을 두드리면서 물건을 사라고 종용했다. 봉고마다 몇 명의 호객꾼들이 창문으로 달려들어 물건을 파는 통에 우린 장사꾼 여인들에게 완전 포위 당했다. 나는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펠릭스는 무슨 일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시간이 오래걸리는 일인지 입장권을 가져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입장권을 끊는데 성공한 우리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안으로 진입했다. 4시쯤이었을까?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공원을 가로질러 반대편 숙소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봉고는 가운데 위에 있는 뚜껑을 열었고, 우리가 일어서서 밖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펠릭스 앞자리로 옮겨 탔기 때문에 뚜껑 위로 동물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일 뒤로 가서 보면 되니까.
*유튜브에서 '길 위에 서니'를 검색하면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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