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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언니/자기만의 방

버스에서 내려 1시간 걷기

2020.5.21.
목디스크 치료를 받으러 시내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시외버스로 코로나가 창궐하자 운행을 중단했다가 최근에 다시 운행을 재개한 버스다. 이 버스를 타면 좋은 점은 집에 일찍 갈 수 있다는 거다. 대신 한시간 넘게 걸어야한다. 이 버스 말고 시내 버스를 타면 집 앞에서 내릴 수 있지만 집에 밤 9시에 도착한다. 그래서 운동도 할 겸 집에 한 시간 넘게 빨리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

지난 화요일에 이어 두번째로 걷는 시간이다. 오늘 시외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는 걸 봤다. 2-3분 차이로 비껴가는구나. 아마 갈아타는 사람 생각해서 시외버스에서 내리면 시내 버스로 갈아탈 수 있게 배차 시간을 일부러 맞췄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시골의 작은 정차역은 지나갈 거다.

난 1시간 걷기 운동 하는 셈 치고 걷는다.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 터미널에서 산 칸쵸를 먹으며 걸었다.

칸쵸가 2000원이나 하니 우리 나라의 물가가 정말 비싸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뒤에 보이는 시외버스 표는 3800원. 시내에서 우리 동네 근처까지 30분 걸린다.

난 남들이 드라이브 하러 오고, 낚시 오고, 캠핑 오고, 등산 하러 오는 멋진 동네에 살고 있다.

이거 불법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예쁜 양귀비 꽃밭을 지난다.

그 어떤 향수보다 향기로운 자연의 꽃 향기. 요즘은 아카시아와 찔레꽃이 한창이다.

멋진 동네. 가끔 차들이 지나가며 날 힐끔 쳐다 본다. 아무도 걸을 것 같지 않는 시골 도로에 왠 여자 한 명이 걷고 있으니까 눈에 띌 수 밖에...

지나가는 차가 날 조고 설까봐 오히려 두렵다. 내가 아는 동네 사람이면 반갑게 타겠지만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이 서서 타라고 한다면 무서울거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니까.

몇 해 전 인도 북부의 스피티 지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오래된 곰파에 가려고 비싼 돈을 주고 차를 대절했다. 인상 좋은 운전사는 날 데리고 곰파로 올라가면서 곰파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지역 주민들이 보이면 차에 태워줬다. 난 돈을 좀 받겠거니 생각해서 유심히 봤는데, 그냥 공짜로 태워주는 거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동네 사람들끼리야 서로 돈 안 받고 태워주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길을 걷고 있는 낯선 이를 태우는 건 주저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한국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걷고 있는 큰 배낭을 맨 여행자들을 종종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같은 여행자였던 입장에서 태워줄까 망설이다가도 ‘그 사람이 누구일 줄 알고 태워줘. 위험하거나 귀찮은 상황이 생길지 몰라.’하고 실제로 태워준 적은 없다.

아무튼 길 가에 핀 꽃 구경도 하고, 호숫가에서 첨벙 소리를 내는 이름 모를 큰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물결 파장도 보고, 남의 집 잘 가꾸어 놓은 밭도 보면서 길을 걷는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가 날 보고 서지 않길 기도하면서.

찔레

가만보면 예쁜 엉겅퀴

신기한 자색 양파꽃(추정)

인적 드문 도로를 한참 걷다가 우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안도감이 든다. 이제 안전해! 한 시간 동안 걸으면서 길 가 풍경에 감탄하는 시간보다 지나가는 차를 무서워하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은 운동아닌 운동 시간.

차를 팔고 나니 돈은 모이는데, 기동성이 없어 시간이 너무 많이 허비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차가 있어서 번 시간을 달 활용할 나도 아니다. 난 많은 시간 누워서 유튜브를 보기 때문에...(그래서 목 디스크에 걸린것)남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요즘 난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작년엔 나도 정말 시간이 너무 부족했는데 요즘엔 남아도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오늘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로 했다. 이 결심은 유튜브 신박사 TV를 보고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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