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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에티오피아

다나킬 2박 3일 투어 - 마지막 날

2020년 1월의 어느 날

 

  어제 난 길바닥에서 잤다. 11시 넘어서 잠에 들었는데 새벽 4시 좀 넘어서 일어났다. 남들이 깨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화장실은 당연히 없다. 어두운 길을 더듬어 사람들이 자고 있는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볼 일을 보고 왔다. 깜깜한 새벽이라 주변이 거의 안 보이는데 아마도 주변은 똥 밭이겠지.

  다섯 시 좀 넘어서 메인 가이드 게레가 일일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난 후딱 일어나서 내 몫의 매트리스와 이스라엘 노부부의 매트리스를 걷어서 쉬고 있는 낙타 앞에 가져다 놨다. 보조 가이드 빌리언은 아직도 쿨쿨 자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나는 이유는 에르타 알레 화산에 다시 가기 위해서다. 어제 봤는데 왜 또 가냐고 물으신다면, 어제보다 오늘 용암이 더 잘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해야하나? 일출도 볼 겸 말이다. 게레가 그렇게 깨울 땐 안 일어나던 보조 가이드 빌리언은 우리가 출발하자 벌떡 일어나 우리 뒤에 붙어 따라 왔다. 그래도 가이드라고 책임감은 살아 있구나.

  "서니, 잘 잤어?"

  "응, 잘 잤어. 길 바닥에서 노숙하긴 처음이야. 그래도 하나도 안 춥던데?"

  "난 추워 얼어죽는 줄 알았어."

  나야 내가 챙겨온 침낭이 있어서 덮고 잤는데, 빌리언은 맨 몸으로 잤나보다. 사실 이 지역은 항상 더운 지역이라서 잘 때 침낭이 필요가 없는데, 내가 여행한 날이 특별히 추운 날이었다. 춥다고 해봐야 내 짐작으로는 영상 20도가 넘는 날이었다. 그러니 가이드들은 무겁게 침낭을 챙겨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헌데 어젠 침낭이 필요한 날씨였다.

  "나 추워서 거의 한 잠도 못 잤다구. 여행사에서는 자기들 돈 모으기엔 급급한데, 직원들의 복지는 전혀 신경을 안 써."

  이건 어딜가나 똑같았다. 여행사 사장은 앉아서 편하게 돈을 모으지만, 현장에서 뛰는 가이드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돈은 적게 받는다. 그래서 그들이 팁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빌리언의 불평을 들으면서 우리는 금새 다시 에르타 알레 화산에 도착했고, 어젯 밤에 본 거나 오늘 본 거나 용암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사진을 찍거나 조용히 앉아 해가 뜨길 기다렸다.

  해가 뜨자 화산의 모습과 용암 지대가 거대하게 드러났다. 내가 밟고 있는 땅도 용암이 흐르다가 굳은 곳이라 돌이라고 부르긴 어울리지 않게 검은 덩이들이 뭉쳐서 대지를 이루고 있었다. 돌이라 하긴 가볍고 다 연결되어 있는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바삭바삭한 거대한 과자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용암이 흐르던 모습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검은 땅, 그 곳엔 군데 군데 틈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와서 손을 가만히 대고 있으면, 손이 따뜻해졌다.

  태양 빛 아래 에르타 알레 화산의 모습을 온전히 구경하고, 우리는 베이스 캠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난 어제처럼 누군가에게 걸음 빠르다는 핀잔을 듣기 싫어서 맨 뒤에서 이스라엘 노부부와 걸었다. 해가 뜨니 화산 주변의 멋진 풍광이 드러났지만, 반대로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화산 주변의 민낯도 드러났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주위로 플라스틱 물병과 쓰레기가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왜 이 좋은 곳에 와서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고 가야하는지, 나와 이스라엘 노부부, 빌리언, 이스라엘 노부부의 가이드들은 한탄을 하면서 길을 내려 갔다. 우리가 노숙한 주변도 플라스틱 물병이 가득했고, 멀리서 그걸 줍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래도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긴 하네. 내가 여기저기 트레킹을 하면서 보고 느낀 건 사실 이런 쓰레기들을 버리는 건 현지인이라는 거다. 사실 대다수의 트레커들은 쓰레기를 되가져 가지 길에 버리지 않는다.

  걸음이 느린 이스라엘 노부부와 보조를 맞추어 걷다보니 우리 팀과 점점 멀어졌다. 노부부를 챙기던 가이드도 어느 순간 먼저 내려가고, 보조 가이드 빌리언도 사라졌다. 어느 새 길 위엔 이스라엘 노부부와 나만 걷고 있었다.

  "서니, 우린 언젠가 한국에 꼭 여행가고 싶어. 한국에서 추천해 줄 만한 여행 코스가 있니?"

  "음...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엔 한국엔 멋진 자연 풍광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도 거의 없어요. 한국은 뭔가 보러 오는 여행지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보기에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나라야. 너희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생활하는 그 자체가 우리가 보기엔 신기하단다. 그런 걸 보러 여행을 가는 거지."

  그런가? 그렇긴 하다. 한 나라에 가면 그 나라만의 특색, 즉 문화가 있다. 그게 신기해서 가는거지 꼭 멋진 풍광이나 건축물을 보러 가는 건 아니지. 허나 난 자연 풍광을 즐기러 여행하는 쪽이라서 우리나라 여행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멋진 곳이 많다. 하지만 난 한국에선 자연 풍광을 보러 여행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러 여행을 다닌다.

  "서니, 한국에선 성인식을 어떻게 하니?"

  "음, 한국에선 특별히 성인식이 없어요."

  "그럴리가. 어느 나라나 고유의 성인식 문화가 있어."

  아이고, 이 부부는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내가 아는 우리나라의 성인식은 없다.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이스라엘에서는 12살에 성인식을 올려. 그 날은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이라서 친척들이 다 모여서 축하를 해 준단다."

  그렇다. 나도 이스라엘의 성인식에 대해서 들어봤다. 친척들이 모여서 아이에게 큰 돈을 주는데, 그걸 가지고 그 때부터 재테크를 해서 대학교 등록금 정도는 마련한다고 말이다.

  "서니, 우리랑 같이 북한 여행 한 번 가볼래?"

  "하하하, 말씀은 감사하지만 못 가요."

  "퍼밋(허가) 받아서 가면 되지."

  "우리나라 사람이 북한 가는 건 불법이에요."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 맨 꼴뜽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다행히 아침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게레가 보이지 않았다.

  "게레 어디갔어?" 빌리언에게 물었다.

  "게레는 다른 차 타고 먼저 갔어."

  "아직 게레랑 작별 인사 못 했는데 이제 못 만나?"

  "걱정마, 이따가 다시 보게 될 거야."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염전 옆에 위치한 큰 소금 호수였다. 신기하게도 그 소금 호수엔 온천이 바로 옆에 있었다. 온천에서 솟은 샘물이 호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소금 호수라 몸이 둥둥 뜨는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난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다. 난 이런 곳에 오는 줄 몰랐기 때문에,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는데, 수영복이 든 내 캐리어는 메켈레의 게스트하우스에 있었다. 삼일 동안 샤워는 커녕 세수도 못해서 내 몸에선 냄새가 났지만, 수영복이 없는 탓에 온천도 할 수 없었다. 하긴 수영복이 있다고 해도 물에 들어가진 않았을 거다. 난 물에 들어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온천과 수영을 즐기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구경을 했다. 바로 옆에 엄청난 규모의 염전이 있었다. 바닷가에만 염전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륙 한 복판에도 이렇게 염전이 있었다. 소금 사막에서 힘들여서 소금을 캐지 않아도, 이렇게 조금 떨어진 염전에서도 소금을 얻을 수 있는데 아직도 소금 사막에서 소금을 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영과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거기에서 게레를 만났다. 게레는 식당에 먼저 가서 손님 식사를 주문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고 빈둥댔는데, 마침 식사를 하던 게레랑 빌리언이 자기들이 점심을 먹는 식탁으로 날 안내했다. 그들은 인제라와 염소 고기에 맥주를 곁들여 마시고 있었다. 힘든 가이드 생활에 한 줄기 빛이라고나 할까? 잠깐의 휴식 시간 동안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게 그들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난 가이드들에게 식사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았다.

  "왜 여행자들에게는 서양식 식사만 제공하지? 난 에티오피아에 왔으니까 너희들이 먹는 것 같은 에티오피아 전통음식이 먹고 싶은데 말이야."

  "맞아, 여행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 스파게티를 먹고 있지."

  "여행사에서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행하면서 서양식을 먹고 싶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것 같아."

  빌리언은 자기가 먹고 있는 인제라를 한 점 떼어서 양념을 묻힌 후 염소 고기를 싸서 나에게 건냈다. 물론 손으로 말이다.

  "서니, 이거 한 번 먹어봐."

  "하하, 고마워, 빌리언. 근데 너네 너무 말랐어. 내가 뺏어 먹으면 안 되는데...너희들 밥 좀 많이 먹어. 몸이 그게 뭐니?"

  난 부러움 섞인 말투로 그들의 점심을 뺏어 먹는 부끄러움을 감췄다.

  "서니, 우리 둘 중 누가 더 말라보여?"

  내가 보기엔 둘 다 마르긴 매 한가지였다. 여기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종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다리가 엄청 가늘고 길었다. 게레나 빌리언은 우리나라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 만큼 말랐다. 식사를 마친 빌리언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다른 팀원들이 식사를 마칠 동안 바로 옆에 커피 가게에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 주위로 삼삼 오오 가이드들과 기사들이 왔다. 나중에 보니 그들의 커피값까지 빌리언이 내주는 것 같았다. 그래봐야 몇 백원도 안 되는 돈이었던 것 같지만...

  어제 우리 지프 기사인 다니는 나에게 땅콩을 사준다고 했었는데 정말 잊지 않고 어디선가 구운 땅콩을 들고 나타났다. 고소한 땅콩은 다니가 졸릴 때 즐겨 먹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식물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작은 돈이겠지만 날 위해 땅콩을 챙겨 준 다니가 무척 고마웠다. 난 다시 다니가 모는 차를 타고 빌리언과 함께 메켈레 쪽으로 이동했다. 빌리언은 나와 함께 메켈레까지 같이 갔다가 오늘 하루 쉬고, 내일 다시 일하러 나온다고 했다. 게레랑 작별 인사를 못해서 아쉬웠는데 길 가다가 또 다시 마주칠 거라 해서 걱정을 안 하고 갔다. 메켈레가 거의 가까워져 갈 무렵 한 동네가 나왔다. 나는 거기서 게레랑 한 번 더 마주치게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빌리언이 말했다.

  "서니, 나 여기서 내려야 해. 지금 바로 일하러 떠나."

  "뭐라고? 너도 여기서 내려? 나 게레랑 인사도 못 했는데...아무튼 너희들 때문에 이 투어 정말 재미있었어. 정말 고맙고, 잘 가."

  나는 떠나는 빌리언에게 팁을 건내 주고 헤어졌다. 나는 메켈레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다니에게도 팁을 건네고, 게레에게 팁을 건내달라고 부탁했다.

  "날 믿어. 서니. 난 크리스찬이잖아. 아마 하루 이틀 뒤에 게레를 또 만나게 될 것 같은데 그 때 꼭 전해줄게."

  그래. 다니. 난 니가 꼭 게레에게 그 팁을 잘 전해 주었을 거라 생각해. 이렇게 에티오피아 여행이 잘 끝났다. 기대했던 소금 사막보다, 신기했던 달롤의 풍광보다도 혼자 온 날 잘 챙겨준 가이드 게레와 빌리언, 기사 다니가 더 기억에 남는 에티오피아 여행이었다.

게레와 빌리언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길 위에 서니를 검색해 주세요.